심연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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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욱 작성일20-02-11 19:27 조회1,204회- 평론가
- 이봉욱
- 전시제목
- 심연의 표상
- 전시장소
- 인사아트센터 3층
- 전시기간
- 2019-10-23 ~ 2019-10-28
본문
차이 공간에서 드러나는 심연의 표상 – 물의 생명력
1. 존재적 실체로 드러나는 물
송경아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작품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작가에게 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되뇌어 본다. 물은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흐르는 물은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표면적으로는 순환의 과정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물들을 생성하고, 내재되어 있는 물질들을 드러내고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된 에너지는 작품에서 물의 형상과 함께 꽃, 배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지표적 이미지는 작가의 보이지 않는 심상의 상태들을 상징적인 조형언어들로 제시하고 있다.
작품은 캔버스에 물의 형태를 그림으로 그린 후 오간자(organza)의 반복을 통해 물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오랜 경험들을 통해 자신만의 심미적 결과물이다. 작가는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들을 오간자라는 오브제를 통해 물의 원형을 드러내고 작가의 존재적 실체들을 만들었다. 작가가 다루고 있는 주제인 물은 물의 순환과 운동을 통해 생명을 태동하게 하는 상징물이다. 이러한 생명의 근원인 물을 작가는 조형적 이미지로 표상하는 또 다른 기호로 형상화하였다. 작가는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관조하며, 자신의 가치와 내면을 바라보고 실현하며 살아간다. 송경아 작가는 자신의 심상의 기원이 되는 물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미적 대상의 예술로 승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작품에서 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은 인간의 내면적 경험들을 작품에 발현시킨다.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면 율동적인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있다.
2. 조형언어는 욕망으로부터.....
작가가 표현하는 물은 심연에 드리워진 욕망들을 물이라는 상징적 표상으로 보인다. 욕망의 표현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존에 관한 본능이며 무의식적 행위이다. 작가는 자신의 무의식적 세계의 욕망들을 물의 원형과 관계지었다. 작가는 본성의 원형을 시각적 이미지인 표상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 작품들은 작가의 심연을 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는 것이며, 이것은 저 너머에 있는 실재의 삶이 아닌가 싶다.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 실재는 물이라는 표상으로 작가는 예술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행복을 느낀다.
그렇다면 송경아 작가가 실재하는 그 지점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심연의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작가의 감각과 밀접한 관계를 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감각이 있으려면 힘이 신체, 즉 파동의 장소 위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나 힘이 감각의 조건이긴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힘이 아니라고 한다. 즉, 심연의 욕망을 느끼는 감각은 힘에서부터 시작되지만 힘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각은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는 힘을 느끼도록 하고, 자기 자신의 조건인 힘으로 상승하게 한다. 그래서 음악은 소리 나지 않는 힘을 소리 나도록 하게 하며, 예술 작품은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게 하여 이미지로 나타나게 한다.
이러한 심연의 욕망은 자신의 결핍된 그 무엇인가를 찾기를 원하고 있다. 사실 욕망은 충족되는 동시에 결핍이 생성되는 순간이다. 즉, 욕망이 충족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새로운 결핍이 생기듯, 완전한 충족은 또 다른 결핍의 이름으로 찾아온다. 결국, 욕망은 욕망하는 그 자체인 것이다. 작가 자신은 스스로 에너지를 갖는 욕망(=결핍)을 예술적 시각 이미지로 조형화하였다. 그는 움직임의 연속인 물의 형상을 오간자의 오브제를 이용하여 스스로 소멸과 생성을 반복함으로써 작가만의 독특한 유기적 조형언어를 만들어 내었다.
갤러리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은 송경아 작가 심연에 내재한 욕망의 본질을 성찰하면서 표출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가로서 삶의 욕망을 파악하고, 예술적 실천으로 발현함으로써 조형예술의 언어인 물이라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물은 삶의 주체자로서 생명력과 본질적 가치를 자신 안에 존재하는 욕망과 결핍을 통해서 형상화할 수 있었으며, 이 욕망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일 것이다.
3. 오간자(organza)을 통한 차이 공간 드러내기
캔버스와 여러 겹의 오간자는 양자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며 이미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차이(differance)들을 발생시킨다. 이 차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어떻게 반영하고 규정짓는지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물리적으로 정지된 화면인 회화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순간의 개념은 현대미술과 현대철학에서 시간성을 제시한다. 이 시간성은 지속성이나 생생한 현재를 가능하게 한다. 시간성이라는 개념은 현대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인상주의로부터 미래주의 등에서도 동시적 시간을 나타낸다. 예술가들은 지속적인 움직임들을 고정된 화면에 표현하고자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송경아 작가는 시각예술의 지속적 시간을 기록하고 시간의 동시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그의 작품은 시간과 물리적 공간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들에게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 그는 오간자를 통해 물의 움직임들을 제시하고 있다. 오간자의 일루젼(illusion)은 사물인 물의 형상을 오간자를 이용하여 하나하나 겹치면서 나타난다. 오간자의 반복된 겹침은 차이와 반복을 나타내며, 여기서 사잇공간, 즉 틈이 발생하며 우리는 이 지점에서 물의 생동감을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틈에서 시각적 움직임을 주며 욕망이 주는 삶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스스로 보편화 된 회화적 형식의 외연에서 탈피하고 자신의 예술세계 내부의 근원을 발현하고자 하였다. 보편적인 회화에 편안한 우리에게 오간자의 움직임들은 다소간 낯섦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금세 작가의 작품에서 오는 편안함과 오간자의 움직임에 매료된다. 작가는 캔버스에서 우선 물의 형상을 나타낸 후 오브제인 오간자를 캔버스 전체를 감싸며 겹겹이 붙여 나간다. 이러한 활동은 작가 자신과 예술적 실천이 직접적으로 교섭하는 장치로 그의 예술적 경험과 그의 내재 된 욕망의 기원들을 표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의 기원은 스스로가 체험한 예술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일상의 삶과 유리된 심연의 기원들을 여러 겹의 오간자를 이용한 완벽한 조화 속에서 물의 화면을 구성하여 우리에게 표상적 이미지의 예술 작품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의 욕망 에너지는 작품이 존재하고 있는 그 공간에서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물의 이미지로 새로운 생명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는 욕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Desidero, ergo sum)’ - 스피노자
이 봉욱 예술학박사